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헤미아 왕국 (문단 편집) == 후스파-가톨릭 내전 == [[지기스문트]]를 마지막으로 룩셈부르크 왕조가 단절되면서 왕조도, [[헝가리 왕국]]-[[크로아트 왕국|크로아티아 왕국]]과의 [[동군연합]] 관계도 수시로 변했다. 일단은 보헤미아, 헝가리 모두 지기스문트의 유언에 따라 사위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2세|알브레히트]]가 물려받았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현지 귀족들에게 넘어갔고, 곧 명목상 섭정이지만 실제로는 왕위나 다름없던 자리를 놓고 보헤미아와 헝가리 사이에서 귀족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알브레히트가 죽자, 헝가리는 알브레히트의 아들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라디슬라프]]를 불신임하고 [[폴란드 왕국]]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를 선출한 반면 보헤미아는 아예 왕을 선출하지 않아 [[동군연합]]은 해소되고 왕위는 비어 있었다. 1453년에야 당시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이 되어 있던 라디슬라프를 추대해 동군연합이 재결성됐으나 국왕의 실권은 없었다. 그도 후사 없이 사망하자 라디슬라프의 섭정으로, 앞선 1419년 지기스문트 통치 당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신앙을 인정받았던 후스파의 우두머리 귀족인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가 왕위에 올랐다. 이르지는 보헤미아 국왕, 폴란드 국왕, 헝가리 국왕, [[부르고뉴 공국]]의 공작과 [[바이에른]] 공국의 공작이 모두 참여하는 대연방을 구상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고 그의 치세는 [[후스파]]와 [[가톨릭 교회]]의 갈등으로 채워졌다. 교황이 보헤미아에 간섭하여 후스파의 개종을 요구하자 자신이 후스파였던 이르지 왕은 거부했고 끝내 파문당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giellon_Realm.png]] 이르지를 파문한 [[교황]]은 보헤미아 내의 가톨릭파 귀족들과 헝가리를 끌여들여 보헤미아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이르지는 군사적으로 헝가리군에 맞서는 한편 폴란드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아들들을 제치고 라디슬라프의 누나 엘리자베트와 결혼한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4세]]의 맏아들인 [[울라슬로 2세|브와디스와프 왕자]][* [[체코어]]로는 블라디슬라프(Vladislav)]를 계승자로 선언하였는데, 이후 이르지 왕이 갑자기 죽어버리면서 장성한 이르지의 아들들 대신 15세의 외국 출신의 어린 왕이 보헤미아 왕위에 올랐다. 전쟁 중이었고 폴란드의 도움이 절실하였으므로 왕으로 모시기는 하였으나, 경험없는 소년 왕은 귀족들 사이에서 별 인기가 없었다. 여기에 블라디슬라프는 독실한 가톨릭이었으므로 후스파 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1478년,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침공한 것을 틈타 보헤미아가 헝가리와 종전 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이 끝나자 보헤미아 귀족들은 블라디슬라프와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가톨릭 귀족들은 후스파에 의해 추대된 왕을 좋지 않게 여겼으며, 후스파는 왕이 가톨릭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것에 반발했다. 폴란드 출신이었던 블라디슬라프는 보헤미아에 아무런 세력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가톨릭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왕권을 약화시켰고, 귀족들은 무력해진 왕을 무시하고 원래 보헤미아에는 없었던 [[농노]]제를 도입하는 등 자신들의 힘을 늘려나갔다. 어쨌든 새 왕 블라디슬라프는 헝가리 국왕 [[마차시 1세]]와 전쟁을 끝내고 후스파 우세지역인 보헤미아 왕국에선 블라디슬라프가, 가톨릭 우세지역인 모라바·슬레스코·루지체에선 마차시가 보헤미아 국왕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1490년, 블라디슬라프가 헝가리 왕 울라슬로 2세[* 헝가리 국왕 울라슬로 1세로 선출되었던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가 블라디슬라프의 큰아버지였던 혈연관계가 크게 작용했으나... 실제로는 띨띨한 예스맨이었던 블라디슬라프를 선출해 꼭두각시로 세우고 귀족들의 세력을 강화시켜 전임 왕 [[마차시 1세]]의 왕권강화 정책을 무산시키고자 했던 헝가리 귀족들의 속셈이었다.]로 선출되면서 모라바·슬레스코·루지체와 보헤미아 왕국은 다시 통합되었고, 보헤미아-헝가리-크로아티아 동군연합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과 함께 리투아니아계 왕가인 [[야기에우워 왕조]]가 다스리는 지역이 되어서 엄청난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국왕에게는 이 영토에 대한 아무런 힘도 없었고, 귀족들이 블라디슬라프를 선출한 이유도 멍청하고 무력하기 때문이었다. 보헤미아-헝가리-크로아티아 야기에우워 왕조는 1526년, 블라디슬라프의 아들 [[러요시 2세|루드비크]][* 헝가리 왕으로는 러요시 2세.]가 헝가리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자 2대 만에 단절되었고, 보헤미아 의회는 루드비크의 매부인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1세]][* 이전의 마지막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국왕 라디슬라프의 [[팔촌]] 동생의 손자이자 누나 엘리자베트의 손녀 사위다.]를 국왕으로 선출하였다. 이렇게 수십 년 만에 보헤미아의 왕위를 다시 얻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후로도 계속하여 보헤미아를 다스렸다. 처음으로 보헤미아 왕위 획득을 꾀했다가 실패한 것이 어언 220년 전인 [[알브레히트 1세]] 때의 일. 그 오랜 세월 끝에 최종 승자는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